14-10-01或問子産.子曰,“惠人也.”
或이 問子産한대 子ㅣ 曰惠人也ㅣ니라
혹이 자산을 묻자온대 공자 가라사대 은혜로운 사람이니라.
[본문해설]
자산과 관련해서는 『맹자』 離婁 하편 제2장과 萬章 상편 제2장 마지막 절을 참고하세요.
子産之政不專於寬然其心則一以愛人爲主故孔子以爲惠人蓋擧其重而言也
子産之政이 不專於寬이나 然이나 其心則一以愛人爲主라 故로 孔子ㅣ 以爲惠人이라 하시니 蓋擧其重而言也ㅣ시니라
자산의 정사가 너그러운 데에만 오로지 하지 아니했으나 그러나 그 마음인즉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주장을 삼았느니라. 그러므로 공자가 써 혜인이라 하시니 대개 그 중한 것을 들어서 말씀하심이라.
14-10-02問子西.曰,“彼哉!彼哉!”
問子西한대 曰彼哉彼哉여
자서를 묻자온대 가라사대 저여, 저여
[본문 해설]
‘彼哉彼哉’는 저 사람이여를 더 낮춰 ‘저것이야 뭐’하는 투다
子西楚公子申能遜楚國立昭王而改紀其政亦賢大夫也然不能革其僭王之號昭王欲用孔子又沮止之其後卒召白公以致禍亂則其爲人可知矣彼哉者外之之詞
子西는 楚公子申이니 能遜楚國하야 立昭王하고 而改紀其政하니 亦賢大夫也ㅣ라
자서는 초나라 공자 신이니 능히 초나라를 사양하여 소왕을 세우고 그 정사의 기강을 고치니 또한 어진 대부라.
然이나 不能革其僭王之號하고 昭王이 欲用孔子어늘 又沮止之러니 其後에 卒召白公하야 以致禍亂하니 則其爲人을 可知矣라 彼哉者는 外之之詞라
그러나 능히 그 참람한 왕의 호칭을 고치지 못하고, 소왕이 공자를 쓰려고 하거늘 또한 그것을 막더니, 그 후에 마침내 백공을 불러서 써 화란을 이르게 했으니 그 사람됨을 가히 알리라. 피재라는 것은 바깥으로 한(외면한) 말이라.
14-10-03問管仲.曰,“人也.奪伯氏騈邑三百,飯疏食,沒齒無怨言.”
問管仲한대 曰人也ㅣ 奪伯氏騈邑三百하야늘 飯疏食沒齒호대 無怨言하니라
관중을 묻자온대 사람이 백씨의 병읍 삼백호를 빼앗거늘 소사몰치(거친 밥을 먹으며 이가 다 빠지도록 살았으되)하되 원망하는 말이 없었느니라.
人也猶言此人也伯氏齊大夫騈邑地名齒年也蓋桓公奪伯氏之邑以與管仲伯氏自知己罪而心服管仲之功故窮約以終身而無怨言荀卿所謂與之書社三百而富人莫之敢拒者則此事也○或問管仲子産孰優曰管仲之德不勝其才子産之才不勝其德然於聖人之學則槪乎其未有聞也
人也는 猶言此人也ㅣ라 伯氏는 齊大夫라 騈邑은 地名이라 齒는 年也ㅣ라
인야는 이 사람이라고 말한 것과 같음이라. 백씨는 제나라 대부라. 병읍은 땅이름이라. 치는 나이라.
蓋桓公이 奪伯氏之邑하야 以與管仲한대 伯氏ㅣ 自知己罪하고 而心服管仲之功이라
대개 환공이 백씨의 읍을 빼앗아 써 관중에게 준대 백씨가 스스로 자기의 죄를 알고 마음으로 관중의 공에 굴복했느니라.
故로 窮約而終身호대 而無怨言하니 荀卿所謂與之書社三百이오 而富人이 莫之敢拒者ㅣ 卽此事也ㅣ라
그러므로 궁하고 간략하게 살면서 몸을 마치되 원망하는 말이 없으니 순경이 이른바 서사(戶口) 삼백을 준 것이고, 부자가 감히 항거를 못했다(상대가 되지 못했다, 곧 관중을 부자로 만들어준 것이 그 누구와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곧 이 일이라.
○或이 問管仲子産이 孰優한대 曰管仲之德은 不勝其才하고 子産之才는 不勝其德이라 然이나 於聖人之學엔 則槪乎其未有聞也ㅣ니라
○혹이 관중과 자산이 누가 나은가하고 물은대 (주자) 가로대 관중의 덕은 그 (자산의) 재주를 이기지 못하고 자산의 재주는 그 (관중의) 덕을 이기지 못하니라. 그러나 성인의 배움에는 곧 대개 그 들음이 있지 않으니라(성인의 학문에는 관중과 자산과 같은 사람에게서 크게 배울 것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