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논어자한편제29장>09-29-01子曰,“可與共學,未可與適道,可與適道,未可與立,可與立,未可 與權.”“

by 20h20h 2024. 12. 17.
728x90
반응형

09-29-01子曰,“可與共學,未可與適道,可與適道,未可與立,可與立,未可 與權.”“

曰可與共學이오도 未可與適道ㅣ며 可與適道ㅣ오도 未可與立이며 可與立이오도 未可與權이니라

공자 가라사대 가히 더불어 한가지로 배우더라도 가히 더불어 도에 가지 못하며, 가히 더불어 도에 가더라도 가히 더불어 서지 못하며, 가히 더불어 서더라도 가히 더불어 저울질하지 못하니라.

 

󰃨可與者言其可與共爲此事也程子曰可與共學知所以求之也可與適道知所往也可與立者篤志固執而不變也 權稱錘也所以稱物而知輕重者也可與權謂能權輕重使合義也

楊氏曰知爲己則可與共學矣學足以明善然後可與適道信道篤然後可與立知時措之宜然後可與權 洪氏曰易九卦終於巽以行權權者聖人之大用未能立而言權猶人未能立而欲行鮮不仆矣 程子曰漢儒以反經合道爲權故有權變權術之論皆非也權只是經也自漢以下無人識權字愚按先儒誤以此章連下文偏其反而爲一章 故有反經合道之說程子非之是矣然以孟子嫂溺援之以手之義推之則權與經亦當有辨

 

可與者言其可與共爲此事也ㅣ라 程子曰可與共學知所以求之也ㅣ오 可與適道知所往也ㅣ오 可與立者篤志固執而不變也ㅣ라

가히 더분다는 것은 그 가히 더불어 한 가지로 이 일을 함을 말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가히 더불어 한가지로 배운다는 것은 써 구하는 것을 앎이오, 가히 더불어 도에 간다는 것은 가는 바를 앎이오, 가히 더불어 선다는 것은 뜻을 돈독히 하고 고집하여 변하지 않음이라.

 

稱錘也ㅣ니 所以稱物而知輕重者也ㅣ라 可與權謂能權輕重하야 使合義也ㅣ라

권은 저울대와 저울추이니 써한 바 물건을 저울질하여 경중을 아는 것이라. 가히 더불어 저울질함은 능히 경중을 저울질하여 의리에 합하게 함이라.

 

楊氏 曰知爲己則可與共學矣學足以明善然後可與適道信道篤然後可與立이오 知時措之宜然後可與權이니라

양씨 가로대 자기를 위한다는 것(爲己之學)을 알면 가히 더불어 한가지로 배움이오, 배움이 족히 써 선을 밝힌 연후에 가히 더불어 도에 가는 것이고, 도를 믿음을 돈독히 한 연후에 가히 더불어 설 수 있고, 때로 마땅히 두는 것을 안 연후에 가히 더불어 저울질하니라.

 

洪氏 曰易九卦終於巽以行權하니 權者聖人之大用이라 未能立而言權이면 猶人未能立而欲行하야 鮮不仆矣

홍씨 가로대 주역 구덕(삼진)괘에 마침내 공순함으로써 권도를 행하니, 권이라는 것은 성인의 크게 씀이라. 능히 서지 못하고 저울질을 말하면 ,오히려 사람이 능히 서지 못하고 가고자 하여도 넘어지지 않을 자 드무니라.

 

程子曰漢儒以反經合道爲權이라 有權變權術之論하니 皆非也ㅣ라 只是經也ㅣ니 自漢以下無人識權字按先儒誤以此章으로 連下文, 偏其反而爲一章이라

정자 가라사대 한나라 선비가 반경합도(법을 돌이켜 도에 합치시킴)로써 권도를 삼음이라. 그러므로 권변권술(권모술수)의 의논이 있으니 다 그릇됨이라. 권은 다만 법도이니 한나라로부터 아래로 사람이 자를 알지 못했느니라. 어리석은 내가 상고하건대 앞선 선비들이 이 문장(29)으로써 아랫글(30) ‘偏其反 을 한 장으로 삼았으니 잘못됐음이라.

 

有反經合道之說하니 程子非之是矣이나 以孟子嫂溺授之以手之義推之則權與經亦當有辨이라

.그러므로 反經合道의 설이 있으니 정자가 그르다고 한 것이 옳도다. 그러나 맹자(離婁章 上편 제17장 참조)가 아주머니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써 잡아당기는 의리로서 미루어본다면, 권도(임시방편적임)와 더불어 법도(, 일정한 법도) 는 또한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함이라.

: 엎드릴 부

[앞주 해설]

易九卦終於巽以行權주역계사하전 제7장의 내용으로 중고(中古)의 성인인 문왕과 주공이 후세를 근심하여 역을 지었는데, 공자는 그 근심한 바를 해결하려면 다음과 같이 아홉 가지 덕을 갖춘 괘(履謙復恒損益困井巽)들이 필요하다고 하였다(대산주역강의 3, 257~272쪽 참조).

 

德之基也ㅣ오 德之柄也ㅣ오 德之本也ㅣ오 德之固也ㅣ오 德之修也ㅣ오 德之裕也ㅣ오 德之辨也ㅣ오 德之地也ㅣ오 德之制也ㅣ라

[九德 一陣] ()는 덕의 터요, ()은 덕의 자루요, ()은 덕의 근본이오, ()은 덕의 굳음이오, ()은 덕의 닦음이오, ()은 덕의 넉넉함이오, ()은 덕의 분별함이오, ()은 덕의 땅이오, ()은 덕의 지음이라.

 

和而至하고 尊而光하고 小而辨於物하고 雜而不厭하고 先難而後易하고 長裕而不設하고 窮而通하고 居其所而遷하고 稱而隱하니라

 

[九德 二陣] 는 화하되 지극하고, 겸은 높되 빛나고, 복은 작되 물건을 분별하고, 항은 섞이되 싫어하지 아니하고, 손은 먼저는 어렵되 나중은 쉽고, 익은 길고 넉넉하되 베풀지 아니하고, 곤은 궁하되 곤하고, 정은 그 장소에 거처하되 (샘물이) 옮겨가고, 손은 맞추되(저울질하되) 숨기니라.

 

履以和行謙以制禮復以自知恒以一德損以遠害益以興利困以寡怨井以辨義巽以行權하나니라

 

[九德 三陣] 로써 화하게 행하고, 으로써 예를 짓고, 복으로써 스스로 알고, 항으로써 덕을 한결같이 하고, 손으로써 해를 멀리하고, 익으로써 를 일으키고, 곤으로써 원망을 적게 하고, 정으로써 의를 분별하고, 손으로써 권세를 행하니라.

 

이를 낙서구궁수리의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

(4)(9)(2)(3)(5)(7)(8)(1)(6)

2

(4)(9)(2)(3)(5)(7)(8)(1)(6)

3

(4)(9)(2)(3)(5)(7)(8)(1)(6)

 

위의 내용을 낙서구궁수리의 이치인 一坎 二坤 三震 四巽 五中 六乾 七兌 八艮 九離에 의거하여 제12(卍往)3(卍來)의 순으로 펼쳐 나가는 것을 살펴보면, 156으로, 267, 378, 489, 591, 612, 723으로, 834, 945로 나아가 이 마침내 가운데 황극에 자리하여 권도를 행함(終於巽以行權)을 볼 수 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