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논너옹야편제2장>06-02-01哀公問,“弟子孰爲好學?”孔子對曰,“有顔回者好學,不遷怒, 不貳過.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未聞好學者也.”

by 20h20h 2024. 10. 7.
728x90
반응형

06-02-01哀公問,“弟子孰爲好學?”孔子對曰,“有顔回者好學,不遷怒, 不貳過.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未聞好學者也.”

<2>

哀公問弟子孰爲好學이니잇고 孔子對曰有顔回者好學하야 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하니 未聞好學者也케이다

애공이 묻자호대 제자가 누가 배움이 좋아하니잇고? 공자 대답하여 가라사대 안회라는 자가 배움이 좋아하여 성냄을 옮기지 아니하며 허물을 두 번하지 않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느니라. 지금에는 없으니 배움을 좋아하는 자를 듣지 못케이다(못했나이다).
* 와 같다.

 

󰃨遷移也貳復也怒於甲者不移於乙過於前者不復於後顔子克己之功至於如此可謂眞好學矣短命者顔子三十二而卒也旣云今也則亡又言未聞好學者蓋深惜之又以見眞好學者之難得也程子曰顔子之怒在物不在己故不遷有不善未嘗不知知之未嘗復行不貳過也又曰喜怒在事則理之當喜怒者也不在血氣則不遷若舜之誅四凶也可怒在彼己何與焉如鑑之照物姸媸在彼隨物應之而已何遷之有又曰如顔子地位豈有不善所謂不善只是微有差失纔差失便能知之纔知之便更不萌作張子曰慊於己者不使萌於再或曰時書六藝七十子非不習而通也而夫子獨稱顔子爲好學顔子之所好果何學歟程子曰學以至乎聖人之道也學之道柰何曰天地儲精得五行之秀者爲人其本也眞而靜其未發也五性具焉曰仁義禮智信形旣生矣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其中動而七情出焉曰喜怒愛懼哀惡欲情旣熾而益蕩其性鑿矣故學者約其情使合於中正其心養其性而已然必先明諸心知所往然後力行以求至焉若顔子之非禮物視聽言動不遷怒貳過者則其好之篤而學之得其道也然其未至於聖人者守之也非化之也假之以年則不日而化矣今人乃謂聖本生知非學可至而所以爲學者不過記通文辭之間其亦異乎顔子之學矣

 

移也ㅣ오 復也ㅣ니 怒於甲者不移於乙하고 過於前者不復於後顔子克己之功至於如此하시니 可謂眞好學矣로다 短命者顔子三十二而卒也ㅣ라 旣云今也則亡라 하시고 又言未聞好學者라 하시니 蓋深惜之又以見眞好學者之難得也ㅣ시니라
程子曰顔子之怒在物不在己不遷이오 有不善이어든 未嘗不知하며 知之未嘗復行하니 不貳過也ㅣ라 又曰喜怒在事則理之當喜怒者也로대 不在血氣則不遷이라 若舜之誅四凶也可怒在彼하니 己何與焉이리오 如鑑之照物姸媸在彼하야 隨物應之而已何遷之有리오 又曰如顔子地位豈有不善이리오 所謂不善只是微有差失이니 纔差失이면 便能知之纔知之便更不萌作이니라 張子曰慊於己者하니 不使孟於再니라 曰詩書六藝七十子非不習而通也ㅣ로대 而夫子獨稱顔子爲好學하시니 顔子之所好果何學歟程子曰學以至乎聖人之道也ㅣ니라 學之道奈何曰天地儲精得五行之秀者爲人이니 其本也眞而精하고 其未發也五性具焉하니 曰仁義禮智信이오 形旣生矣外物觸其形而動於中矣其中動而七情出焉하니 曰喜怒哀懼愛惡欲이라 情旣熾而益蕩하면 其性鑿矣學者約其情하야 使合於中하고 正其心하야 養其性而已이나 必先明諸心하야 知所往然後力行以求至焉이니라 若顔子之非禮勿視聽言動不遷怒貳過者則其好之篤而學之得其道也ㅣ라 이나 其未至於聖人者守之也ㅣ오 非化之也ㅣ니 假之以年이면 則不日而化矣리라 今人乃謂聖本生知非學可至라 하야 而所以爲學者不過記誦文辭之間하니 其亦異乎顔子之學矣

천은 옮김이오, 이는 다시이니 갑에서 성낸 것을 을에서 옮기지 아니하고, 앞에서 허물한 것을 뒤에서 다시 아니하니라. 안자가 자기를 이겨낸 공이 이와 같음에 이르니 가히 호학이라 이르리로다. 단명이란 것은 안자가 32살에 죽음이라. 이미 지금은 없다하시고 또 배움을 좋아하는 자를 듣지 못했다 하시니 대개 깊이 애석히 여기고, 또 써 참으로 배움 좋아하는 자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줌이라.

정자 가라사대 안자의 성냄은 물건에 있고 자기에게 있지 않느니라(그 물건 때문에 그로 인해 성낸 것이지 내 몸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물건을 떠난 뒤에는 다른 곳에 가서 성낼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옮기지 아니하고, 선하지 못함이 있거든 일찍 알지 아니치 아니하며 알거든 일찍이 다시 행하지 아니하시니 허물을 두 번 아니함이라.

또 가라사대 기쁘고 성냄이 일에 있으면 이치의 마땅히 기쁘고 성낼 것이로되 혈기에 있지 아니하면 옮기지 아니하니라. 만약 순임금이 4흉을 베는데 가히 성냄이 저(4흉 곧 오랑캐)에 있으니 자기가 어찌 참여하리오(성내리오).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침에 예쁘고 추함이 저에 있어서 물건에 따라 응할 뿐이니 어찌 옮김이 있으리오. 또 가라사대 안자의 지위와(처신과) 같다면 어찌 불선함이 있으리오.

이른바 불선은 다만 이 미미하게 어긋남과 실수가 있을 뿐이니, 겨우 어긋나고 실수가 있다면 문득 능히 알고, 겨우 알면 문득 다시는 싹터 나오지 않게 했느니라. 장자 가라사대 몸에 족한 것(마음속에 흡족한 것이 아닌 몸에 족한 것, 몸에 밴 일)을 하여금 다시는 싹 나지 않게 함이라. 혹이 가로대 시와 서와 육예를 칠십 제자가 익혀서 통하지 않음이 없으되 부자께서 홀로 안자만을 호학이라 일컬으셨으니 안자의 좋아하는 바가 과연 어떠한 학문이었습니까? 정자 가라사대 배워서 써 성인의 도에 이름이니라.

배우는 도는 어떠한 것입니까? 가라사대 천지가 정기를 저장함에 오행의 빼어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니 그 근본에는 참되어 고요하고, 그 발하지 아니함에는 오성이 갖추어졌으니 가로대 인의예지신이고, 형체가 이미 나옴에 바깥 물건이 그 형체에 접촉되어 속에서 움직이니 그 중이 움직여 칠정이 나오니 가로대 희노애구애오욕이라. 정이 너무 극성하여 더욱 방탕하면 그 성질(본성)이 파헤쳐지느니라(포악해지느니라).

그러므로 깨닫는 자는 그 ()정을 간략히 하여 중에 합하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그 성품을 기를 뿐이니라. 그러나 반드시 먼저 저 마음을 밝혀서 가는 바를 안 연후에 힘써 행해서 써 이름을 구하느니라. 안자와 같이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는 것과 성냄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두 번하지 않은 것은 곧 그 좋아함의 독실함이고 배워서 그 도를 얻음이라.

그러나 그 성인에 이르지 못한 것은 지킴이오, 화함이 아니니, 나이로써 빌렸다면(안자가 더 살았다면) 얼마 안 가서 화했으리라. 지금 사람이 이에 이르기를 성인은 본래 나면서부터 알았고, 배워서 가히 이르지 못한다하여 기록하고 외고 글 짓고 말 만드는 사이에 지나지 아니했으니 그 또한 안자의 배움과 다르도다.
: 추할 치 : 겨우 재 : 저장할 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