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해(百里奚)의 생애
百里奚는 虞나라 사람으로 중국 춘추 시대 秦나라의 재상으로, 자는 井伯이며 완宛사람이다
虞나라에서 계속되는 가난에 벼슬자리을 찾아 떠나 齊나라에 당도했지만 그곳에서도 천거해주는 이가 없어 결국 거지가 되어 구걸하기에 이른다. 구걸을 하며 떠돌던 백리해는 蹇叔이라는 은둔자와 만나게 되는데, 이때 그는 "그대의 행색을 살펴보니 빌어먹는 걸인은 아닌 듯하다."라며 백리해를 그의 집에 머무르게 하고 結義兄弟를 맺어 서로간의 두터운 우정을 쌓게 된다. 건숙 역시 형편이 좋지 못해 백리해 역시 마을에서 소를 길러 양식을 보탰다.
그러던 중 齊나라의 襄公을 시해하고 군주의 자리에 새로 올라앉은 無知가 현사를 구한다는 방을 본 백리해는 제나라로 가서 출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건숙은 죽은 양공의 아들들이 모두 나라 밖에 살아있으므로 무지는 절대 군주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를 만류한다. 또 얼마 후, 주나라 왕자 頹가 소를 잘 기르는 자를 찾는다는 것을 듣게 된 백리해는 곧장 건숙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주나라로 향한다. 그러나 이때도 역시 백리해의 뒤를 따라 도착한 건숙이 頹를 만나보고는, 頹가 품은 뜻은 크지만 그의 재주가 그 뜻에 미치지 못하고 주변에는 아첨꾼만이 가득하니 필히 분에 넘치는 일을 도모해 낭패를 볼 것이라며 백리해를 또 다시 만류한다.
이후 백리해는 건숙의 소개로 우(虞)나라의 재상인 궁지기(宮之寄)를 만나게 되는데, 궁지기는 백리해의 재주를 보고 그를 천거한다. 이에 우공(虞公)은 그를 중대부에 임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건숙은 이때도 우공의 사람됨이 뜻이 적고 스스로 쉽게 만족하는 인물이라 주인으로 모실만한 위인이 아니라며 저지한다. 이러한 건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리해는 지속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우(虞)나라로 출사하게 된다
虞에서 고난당하다
백리해가 虞의 중대부로 있을 때, 晉나라 獻公은 虢나라와 虞나라를 동시에 집어삼킬 계략으로 虞公에게 垂棘之璧과 屈産之馬를 선물하며 괵나라로 가는 길을 열어달라 청한다. 겉으로는 虞의 길을 빌려 虢을 토벌하고 우나라와는 우호관계를 맺고자 한다고 둘러대었지만, 그 속내를 눈치챈 백리해의 친구 궁지기는 괵나라와 우나라가 입술과 이의 관계와 같다며 이를 완강히 반대했다. 여기서 脣亡齒寒이란 故事成語의 유래가 나온다. 그러나 우공이 그의 간언을 전혀 수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백리해는 서둘러 궁지기를 말리고 그를 다른 나라로 피신시켜 은거하게끔 한다.
이후 晉은 계획대로 虢을 함락시키고 차례로 虞 역시 순조로이 무너뜨린다. 虞의 쇠퇴 과정에서 백리해는 우공에게 받은 녹봉에 대한 보답이라며 끝까지 그를 모시며 곁에 남는다. 또한 虢 출신이지만 晉에 항복해 헌공으로부터 대부의 벼슬을 받은 주지교는 백리해를 헌공에게 추천하는데, 백리해는 "옛날에 모시던 군주가 아직 살아있는데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라며 거절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꼬집어 비판했다고 여긴 주지교는 백리해에게 앙심을 품어, 이후 헌공의 딸인 伯姬가 秦의 穆公에게 혼인을 갈 때에 그를 몸종으로 보내자고 주장한다.
秦 穆公과 만나다
이후 秦穆公은 晉에서 보내온 몸종 명단을 확인하던 중, 목록에 포함되어있던 백리해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목공은 公孫枝를 통해 백리해가 굉장히 현명한 현인이라는 것을 듣게 되고 곧바로 사람을 보내 백리해의 행방을 찾는다.
알고보니 그는 秦으로 가는 도중 행렬에서 몰래 벗어나 楚나라로 도망쳤고, 또 그곳에서 한 야인을 만나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처한 상황과 함께 소를 잘 기를 수 있다고 설명하여 楚나라에서 정착했던 것이다. 게다가 소를 잘 기른다는 소문이 초왕에게까지 퍼지게 되어 御人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아낸 秦穆公은 큰 재물을 지불하고 그를 데려오려고 한다. 그러나 公孫枝는 많은 재물로 그를 얻고자 한다면 楚왕에게 그가 현인임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목공을 만류한다. 공손지의 조언에 따라, 도망친 몸종을 찾아오고자 한다며 초왕에게 五羖羊皮를 지불하고 무리없이 백리해를 데려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목공은 백리해를 보고 나이가 너무 많다고 실망하는데, 이에 백리해는 이렇게 답한다.
날아다니는 새를 쫓고 맹수를 잡게 하실 요량으로 부르셨다면
신은 이미 늙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랏일을 맡아보라 하시다면 신은 아직 젊습니다.
이러한 백리해의 대답에 그의 비범함을 눈치챈 목공은
그제서야 자세를 정중히 가다듬고 秦을 강국으로 만드는 대책을 물었다.
그러자 백리해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은 외진 곳에 있지만 지세가 험하고 병마는 강하고 날쌥니다.
진격하면 공격할 수 있고, 물러나면 지키기에 유리합니다.
유리한 조건을 충분히 이용하면 기회를 노려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후 진목공은 그와 3일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백리해의 비범함에 대한 확신을 느끼고 '상경'이라는 벼슬을 내려 진나라의 모든 정치를 맡기고자 하였다. 이에 백리해는 이를 마다하면서, 건숙을 추천한다
義兄 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다
건숙은 제나라 출신의 뛰어난 현인입니다. 제가 송나라에서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낼 때,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교우한 인물입니다.
소를 잘 길러 왕실의 신임을 얻었는데, 왕실은 저에게 왕실로 와서 낮은 관직을 맡으라고 했지만 건숙은 왕실의 내부 분란을 먼저 알아채고, 그에게 관직을 맡지 말라고 만류하였습니다. 건숙의 만류를 받아들여 고향에서 대부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건숙은 앞날을 멀리 내다보는 慧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에 진목공의 밑에서 일하게 되자, 그는 건숙의 권고로 인해 위험에서 벗어났던 일들을 말하며 본인이 아닌 그를 상경으로 세울 것을 간청한다. 결국 진목공은 건숙은 우서장, 백리해는 좌서장으로 삼아 그 위계를 상경으로 한다.
건숙과 백리해는 각각 좌·우 승상이 되어 그를 탁월하게 도왔다.
진문공은 晉나라를 양쪽으로 압박하기 위해 정나라 공격을 계획하는데, 백리해와 건숙은 소식을 듣자마자 진문공을 만류하였다. 그러나 秦 목공은 이들의 간청을 듣지 않았고 晉군과 싸워 많은 군사를 죽게 하였다. 진목공은 이후에 자신이 두 노인의 말을 듣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겼다며 후회하게 된다. 건숙은 백리해와 함께 걸출난 현자이다
백리해가 건숙을 모셔오다
지금 건숙은 송나라의 鳴綠村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속히 사람을 보내어 데려와야 될 것입니다."
목공이 公子縶을 상인으로 분장시키고 많은 폐백을 주어 송나라로 보내어 건숙을 모셔오도록 했다.
건숙의 마을에 당도한 공자집은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동자
"이웃의 노인 분들과 함께 石梁에 있는 샘물을 구경하러 가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돌아오실 것입니다."
공자집이 그 집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의 바위 위에 앉아서 기다렸다.
동자가 사립문을 반쯤 열어 놓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자 눈썹은 짙고 눈은 고리 모양처럼 동그랗게 생기고,
얼굴은 네모나며 키가 큰 대한이 등 뒤에 사슴 넓적다리 두개를 지고 밭이랑
서쪽으로 난 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자집이 그 사람의 용모가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였다.
그 대한은 즉시 사슴 다리를 땅에 내려놓으면서 공자집에게 예를 올렸다.
공자집이 그 대한에게 성과 이름을 묻자 대한이 대답했다.
"성은 蹇이고 이름은 丙입니다. 字는 白乙이라고 합니다."
공자집
"건숙이라는 분과 귀하는 어떤 사이인가요?"
대한
"저의 부친이 되십니다. "
공자집이 蹇丙에게 다시 한 번 예를 올리면서 말했다.
"오랫동안 뵙기를 앙모하여 왔습니다. "
건병
"귀하는 어떤 분이시기에 친히 이곳까지 왕림하셨습니까?"
공자집
"백리해라는 분이 지금 저희 陝秦에서 벼슬을 살고 있는데 저에게 편지를
써서 주며 부친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건병
"선생께서는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잠시 쉬시고 계시면 저희 부친께서는 조만간에
돌아오실 것입니다. "
말을 마친 건병은 사립문을 밀쳐 열고 공자집을 방안으로 청한 후 땅에 내려 논
사슴다리를 다시 등에 지고는 집안으로 옮겼다.
동자가 나와서 건병에게서 사슴다리를 받아들고는 부엌으로 날랐다.
건병이 방안으로 들어와 다시 공자집에게 예를 올리고 손님과 주인의 격식을 따져
자리에 앉았다.
공자집과 건병이 농사와 누에치는 일에 대해서 담론을 시작하여 무예에 대하여
논하게 되었다.
건병의 강론은 순서가 심히 정연하여 공자집이 마음속으로 칭찬하면서 생각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니 정백이 추천한 것도 도리가 있는 일이었구나"
동자가 차를 가지고 들어오자 건병은 동자에게 그 부친이 오는지 문 앞에 나가서
기다리게 했다. 얼마 있지 않아 동자가 달려와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 노옹께서 돌아오십니다."
건숙과 이웃에 사는 노인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건숙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수레 두 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말했다.
"우리마을 같은 벽촌에 무슨 연고로 이와 같은 수레가 있는가?"
건병이 집밖으로 나와서 그 연고를 먼저 이야기했다.
건숙과 이웃의 노인 두 명이 같이 방으로 들어가 공자집과 상면하게 되었다.
건숙이 공자집과 예를 마치고 자리에 좌정하면서 말했다.
건숙
"제 자식을 통해서 귀하께서 저의 아우 井伯의 편지를 전하기 위하여 오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져오신 편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공자집이 백리해의 서신을 꺼내어 건숙에게 전했다. 건숙이 편지의 봉함을 뜯고 읽었다.
' 奚가 형의 충고를 듣지 않아 虞나라에서 재난을 당했으나 다행히 陝秦의 군주가 현사賢士를 좋아하여 소를 치는 노예의 신분에 있던 저를 속죄시켜 陝秦의 정사를 맡겼습니다.
奚가 스스로 헤아려 본바 재주와 지혜가 형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형을 천거하여
섬진의 군주를 같이 모시려고 하였습니다.
섬진의 군주가 형을 경모하기를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 같이 하시어 대부
公子縶에게 폐백을 내려 형을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빨리 出山하시어 평생에 펴보지 못한 뜻을 세상에 베풀기 바랍니다.
만약 형이 산림에 연연하여 세상으로 나오지 않으신다면 이 해(奚)도 섬진의 군주로부터 받은 작록을 버리고 鳴鹿村으로 가서 형과 함께 살겠습니다.'
건숙이 편지를 다 읽고 말했다.
" 井伯이 어떻게 해서 섬진의 군주를 만나게 되었습니까?"
공자집은 백리해가 唐晉 獻公 딸인
伯姬의 몸종 신분으로 섬진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초나라로 도망친 것을 섬진의 穆公이 백리해가 賢士라는 것을 알고 양가죽 다섯 장을 초나라에 주고 백리해를 속죄시켜 섬진으로 데려온 일의 전후사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한 후에 이어 말했다.
"저희 군주께서 백리해에게 上卿의 벼슬을 내렸으나 井伯이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는 건蹇 선생에게 못 미친다고 말하면서 반드시 건 선생을 섬진으로 모셔와야만 비로소 정사를 맡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군주께서 얼마간의 예물을 내려 주시면서 저에게 건 선생을 모셔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
공자집이 말을 마치자 좌우에 있던 종자들에게 말하여 수레의 짐칸에 있던 물건들을 꺼내게 하여 예물의 품명을 적은 장부와 맞추게 한 다음 건숙의 초가집 마당에 늘어놓게 하였다.
이웃에 사는 노인들은 모두 산야에 사는 농부들이라 이와 같은 성대한 예물을 본적이 없어 서로 얼굴만을 쳐다보며 놀라워하면서 공자집을 향하여 말했다.
"우리는 귀인이 여기에 온 것과는 상관이 없는 듯 하오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공자집
"두 분 노인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군주께서 蹇叔 선생을 모시고 싶은 마음은 마치 말라비틀어진 묘목이 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으십니다.
번거롭겠지만 두 분 노인께서는 한 말씀을 올려 저를 도와주신다면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습니다. “
목공과 건숙과의 대화
백리해-형이 안오시면 나도 산속으로 가겠소
건숙-백리해가 70이 넘어 이제 정사를 해보려하는데 도와줘야지
승낙하고 산골 친구들에게 선물을 모두 나누어주고 하는말
기다리게 다시 농사지으려 산속으로 올테니
목공-어떻게 나를 도울 것인가?
건숙-덕과 위엄입니다
목공-무엇이 먼저인가?
건숙-德
德有 威嚴無는 나라를 빼앗기고
德無 威嚴有는 백성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덕과 위엄만으로는 안되고 3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첫째-욕심을 버리고
둘째-분노하지 않고
셋째-조급히 서둘지 않으면 만사대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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