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蘭刻木과 王祥臥氷
중국 고서 <태평어람> 효자전에서는
효자 정란이 아버님의 상을 조각하였다고 하여 ‘정란각목’(丁蘭刻木)이란 고사가 전해온다.
효자 정란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님이 너무 그리워생전의 아버님 상을 조각하여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대소사를 여쭈어보곤 했다.
어느 날 옆집 사람이 도끼를 빌러 왔는데 여느 때처럼 아버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날 따라 아버님 안색이 어두우신 듯하여 옆집 사람에게 아버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니
다음에 빌려 드리겠노라 하였다.
도끼를 빌러 왔던 사람이 집에 가 생각해 보니 괘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는 다른 곳에서 도끼를 빌려 정란 아버님의 목각상을 내리찍었는데
그때 목상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고 한다.
나중에 정란이 부친의 목상을 보니 그 얼굴에 분노하고 불만이 가득차 있는 기색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하여 보검을 빼 들고 결국 그 이웃을 찔러죽였다
관리에게 체포된 정란이 붙잡혀 가면서 부친의 목상을 향해 이별을 고하는데
이때 부친의 목상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군현의 관리가 이를 보고 그의 효행에 감동한 결과임을 인정하고 그를 석방시키고 포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는 법적으로 보면 정란이 흉악한 살인범이지만 그의 행동은 오히려 효행으로 간주되어
‘효’는 일찍이 유교에서 만사의 근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효자 정란의 효행은 당시 지도층들을 감복시켜서
전국의 주요한 길목에
효자 정란을 조각한 조각이나 그림을 전시하여 백성들이 효행을 본받도록 권장하였다고 한다
왕상은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를 이은 서진(西晉) 사람으로 .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가 재혼하여 성이 주(朱)씨인 부인을 맞이하였다.이 계모는 마음이 편협하여 자비롭고 인자한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시시때때로 왕상을 구박하기 일쑤였다.계모는 그의 아버지 앞에서 늘 왕상의 험담을 하였는데 험담이 잦아지자 아버지까지도 점점 계모의 말을 믿게 되어 왕상을 냉담하게 대하기 시작하였다.왕상은 이렇듯 많은 억울함을 당했지만 조금이라도 부모를 원망하거나 한탄한 적이 없었으며,여전히 정성을 다하여 부모께 효도하였다.어느 해 왕상의 계모가 신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그의 계모는 한 가지 음식을 특히 좋아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신선한 생선을 먹는 것이었다.그러나 때는 겨울철이었으므로 날씨는 매우 춥고 도처의 강이 모두 얼어 버렸으니 어떻게 신선한 생선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왕상은 얼어붙은 강가에 나가서도 적당한 방법을 강구할 수 없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웃옷을 벗어 알몸으로 얼어붙은 강 위에 누워 자기의 체온으로 꽁꽁 언 강을 녹이고자 하였다 여기서 왕상와인(王祥臥人)이란 고사가 전해져 온다 그러자 잠시 후 그의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갑자기 얼어붙은 강이 갈라지며 구멍이 나더니 잉어 두 마리가 튀어 나왔다.왕상은 너무나 기뻐서 살아 있는 잉어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 계모로 하여금 드시게 하였다.그 잉어를 먹은 왕상의 계모는 몸이 점차 쾌유되고 아울러 마음도 착하게 되어 왕상을 친아들 이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