結草報恩 뜻 유래
풀을 묶어 은혜를 갚음
(죽어서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음)
춘추시대 진(晉 나아갈 진) 나라
대부 위무에게는 애첩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병석에 눕게 된 위무는 아들 위과를 불러 자신이 죽으면
애첩을 재가시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위독해진 위무는 정신이 오락가락해지자
말을 바꾸어 자신이 죽으면 애첩도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기신 전혀 다른 두 유언 사이에서
고민하던 위과는 애첩을 순장하는 대신 다른 곳에 시집보내면서
"난 아버지께서
맑은 정신에 남기신 말씀을 따르겠다"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세월이 흐른 후
이웃 진(秦 벼이름 진) 나라에서 진(晉) 나라를 침략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전투에서 위과가 적장 두회와 싸우다 위태로운 상황에 몰린 급박한 상황에서
적장 두화가 풀에 걸려 넘어져 위과는 그를 쉽게 사로잡아 큰 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한 노인이 위과의 꿈속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출가시켜 준 아이의 아비요.
오늘 풀을 묶어 그대가 보여준 은혜를 갚은 것이오"라고 합니다.
통일을 이룬 秦과 晉
秦☜ 춘추전국을 통일 晉☜ 삼국(위 촉 오)을 통일
黃雀銜環
「후한(後漢) 때 사람 양보(楊寶)가 아홉 살 때 화음산(華陰山)의 북쪽에 올랐다가, 꾀꼬리 한 마리가 올빼미의 공격을 받아 나무 밑으로 떨어져 개미들에게 곤혹을 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양보는 꾀꼬리를 집에 데려와 두건을 보관하는 상자에 넣고 국화를 먹였다. 백여 일이 지나자 꾀꼬리의 날개에 깃털이 자라나 날아갔다. 그날 밤, (양보의 꿈에) 노란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양보에게 재배를 하면서 말했다. “저는 서왕모(西王母)의 사자(使者)랍니다. 당신이 인애함으로 나를 구해 주었습니다. 구해 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백옥가락지 네 개를 주면서 말했다. “당신의 자손들이 이 옥가락지처럼 결백하게 되고, 지위는 삼공에 오르도록 해 주겠습니다.”
이 양보(楊寶)의 아들이 학자로 유명한 四知의 주인공 楊震이다
이 이야기는 남조 양(梁)나라의 오균(吳均)이 지은 《속제해기(續齊諧記)》에 나오는데, 노란 옷을 입은 동자가 옥가락지를 물어다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황작함환’이 유래했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서왕모는 서방 곤륜산(崑崙山, 옥산(玉山))에 사는, 사람 얼굴에 호랑이의 이빨(虎齒), 표범의 꼬리(豹尾)를 가진 신인(神人)이라고 하는데, 민간에서는 불사의 약을 지닌 선녀로 전해진다. 서왕모에 대한 이야기는 한(漢) 대에 이르러 민간에 널리 퍼졌다.
‘황작함환’은 ‘결초보은’과 더불어 선행에 대한 보은의 의미로 많이 쓰이는데, 이 둘을 구분하자면 함환은 살아서 보답하는 것이고, 결초는 죽어서 보답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는 함환이요, 죽어서는 결초하겠다.(生當銜環, 死當結草)’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