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유언장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 힘든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장성한 두아들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조각을 가득채우고 튼실한 자물쇠를 채웠다
어느날 아들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노안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열어보려 하였지만 자물쇠로 잠겨져있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 숨겨놓은 금덩이가 아닐까
아들들은 그때부터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서로 아버지를 모시겠다며 이상한 효심이 넘쳤다
그리고 엄마뒤 노인은 돌아가셨고 아들들은 장례를 치른 후 침이 마르도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궁금한 궤짝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
깨진 유리조각만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었다 두아들은 화를 내었다 서로 쳐다보며 소리없이
망했다 당했군
그리고 궤짝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생을 향해 왜 궤짝이 탐나냐 ? 그럼 네가 가져라
막내 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적막한 시간 1분, 2분, 3분...
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막내 아들이 그 궤짝을 집으로 옮겨왔다
나뭇가지가 조용하려해도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옛글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다 그는 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조각을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막내아들은 편지를 읽어내려가며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아들 딸도 달려왔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는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때부터 30여 년 동안 수 천번 아니 수 만번 그들은 나를 울게하였고 또 웃게하였다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자식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이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한 기억으로
지금도 사금파리로 깨진 유리조각처럼 조각난 기억만 남아 있구나
아, 내 아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느그들의 늘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 딸도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도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