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4 대 미녀 - 경국지색의 주인공
음양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니 악녀가 있으면 미인이 있는법
*서시(西施)
중국의 4대 미녀 중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서시.
서시는 춘추전국시대 말, 월(越)나라의 미녀이다.
하루는 그녀가 강변에 있는데 맑고 투명한 물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수중에 있던 물고기가 그 미모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서시가 강변을 거니는 모습을 구경하던 물고기들이 그녀의 미모에 홀려 헤엄치는 것을 잊었다가 물밑으로 가라앉아버렸다 하여 그녀를 침어(浸魚)의 미인이라 한다.
그녀의 미모에 비단 물고기만 놀란 것이 아니다.
당시 오(吳)나라의 왕 부차와 월(越)나라의 왕 구천이 싸우던 중 구천이 패하게 되어 항복하고 부차의 신하가 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구천은 치욕을 씻기 위해 뛰어난 미모를 소유한 서시를 부차에게 바치면서 미인계를 쓰고, 부차는 서시의 미색에 빠져
국정은 돌보지 않고 정치를 태만하게 한다. 그 틈을 타 구천은 부차를 공격하여 오나라를 패망시킨다.
오나라가 패망한 뒤 서시는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지만 구천의 정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당한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주인공이자 영웅호걸들의 애간장을 녹인 장본인 서시. 아름답고 화려한 외면 속에 남모를 슬픔이 서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인계란 바라는 목적이 있을 때 아름다운 여인으로 하여금 상대를 유혹하게 하여 뜻하는 바를 성취하는 건데 이를 저속하게는 ‘성 상납’이라고 표현한다.
여자의 인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단지 임무와 사명감만으로 마음에도 없는 남자를 유혹하고 때로는 몸까지 허락해야 하는 비운.
서시와 같은 인물이 오늘날에도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왕소군(王昭君)
뇌물을 주지 못해 추녀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 *왕소군(王昭君)
한(漢)나라의 왕소군은 재주와 용모를 두루 갖춘 팔방미인이다. 당시 한나라의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를 화공에게 그리게 하여 초상화를 보고 아름다운 궁녀를 골라 총애하였다. 궁녀들은 자신들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화공에게 앞다투어 뇌물을 바쳤다.
그러나 가난했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못해 본인의 외모와는 상반되는 미운 초상화가 그려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화친을 위해 북쪽 흉노왕에게 궁녀를 보내려던 원제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뽑아서 보내도록 하였다. 원제는 이별의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왕소군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미모에 반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흉노왕에게 보내고 만다.
하늘을 날아가던 기러기들까지 넋을 잃어 날갯짓 하는 것을 잊어버려 추락했다고 해서 낙안(落雁)이란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흉노왕의 아내가 되어 싸움이 빈번하던 두 나라를 50년 이상 원만한 관계로 유지시킨다. 현대 중국인들은 왕소군을 고대 영웅 중 한 사람으로 꼽기도 한다. 앞서 궁녀들이 화공에게 자신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뇌물을 바치는 모습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뇌물수수는 가장 만연하게 행해지는 비리인 듯하다.
그래서 그만큼 더 뿌리뽑기 힘든 부정행위이다. 비록 가난했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질 못해 오랑캐의 땅으로 보내졌지만 탁월한 국정능력을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그녀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지도자의 양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비운의 여인을 위해 후대에 이백(李白)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이 그를 哀惜(애석)해 하는 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동방규의 이 작품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특히“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못지않게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도 옛날에 언어 遊戲(유희)로 많이 회자(膾炙) 되었던 句節(구절)이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의 혁대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야윈 몸 때문만 아니라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좋은 시절이 왔지만 상황이나 마음이 여의치 못하다는 의미로도 쓰임
*초선(貂蟬)
여포와 동탁의 그녀 - 초선(貂蟬)
초선은 중국의 4대 미녀 중 유일한 가상 인물이다. 초선은 삼국지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한(漢)나라의 대신 왕윤(王允)의 수양딸로 용모가 명월 같았을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하루는 초선이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는데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리우자 그 모습을 본 왕윤은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 수가 없네. 달이 부끄러워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구나." 라고 말해, 이 때부터 초선은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비록 양아버지였지만 초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었고, 그녀 또한 그를 잘 따랐다. 훗날 초선은 왕윤의 부탁을 받고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의 계략을 실행에 옮긴다.
미인계를 써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켜 서로 질투하게 하고 배신하게 하여 결국 여포로 하여금 섬겨야 할 주인인 동탁을 칼로 베어 죽이게 한다.
동탁을 죽게 만든 후 초선 또한 의로운 목숨을 거둔다. 아름다운 여자는 수명이 길지 않거나 운명이 기구하다더니 ‘미인박명’ 은 초선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비록 남들보다 일찍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누구보다 용기 있는 여인이었다. 당시 동탁은 권력의 찬탈과 폭정으로 후한을 멸망시키고 제국을 분열시키는 등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던 터였다. 다들 동탁이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맞서 싸우는 이는 없었다.
그 찰나 초선이 개입돼 동탁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의 부탁이라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후한 말 ‘폭정’과 ‘ 권력찬탈의 쿠데타’를 멈추게 한 1등 공신은 초선이 아닌가 싶다.
*양귀비(楊貴妃)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절세미인 - 양귀비(楊貴妃)
자질풍염’미인으로 유명한 양귀비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며,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다. 본래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수왕의 비로 17세 때 궁에 들어왔으나 시와 노래에 뛰어난 보기 드문 절세미인으로 현종의 눈에 들게 되어 간택되었다.
현종이 양귀비를 무척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딸들도 현종의 비로 맞아들여졌고, 사촌오빠인 양국충은 재상이 되었다. 한편 돌궐족 출신인 젊은 장군 안녹산은 양귀비가 무척 예뻐하던 양자였는데, 양귀비의 득세를 등에 업고 엄청난 권세를 누리게 된다.
양국충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자 안녹산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안녹산이 ‘안사의 난’ 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수도가 점령당하자 현종과 황실은 피신해야만 했고, 도망가던 중 현종의 친위병들은 황실의 몰락이 양씨 일가 때문이라고 여겨 양귀비와 양국충을 처형하라고 현종에게 제기한다.
목숨과 사랑 중 목숨을 택한 현종은 결국 양귀비를 처형하는데 동의하고 양귀비는 자결 아닌 자결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현종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기적이고 대범하지 못한 남자였다.
어찌 보면 본인이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정치를 소홀히 한 과실을 양귀비에 떠넘긴 비겁한 남자이기도 하다. 사실 현종은 소싯적 정치에 꽤나 소질이 있는 황제였다.
양귀비의 미모는 ‘수화(羞花)’, 즉 ‘꽃이 부끄러워한다’라는 말로 대변된다. 이 말은 열일곱 살에 궁에 입궐한 양귀비가 아직 현종의 눈에 띄기 전인 어느 날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정원에서 꽃을 구경하던 양귀비가 화려하게 핀 모란과 월계화를 보고 덧없이 지나가는 청춘을 아쉬워하며 “꽃아! 너는 해마다 피어나지만 나는 언제 빛을 보겠느냐!”라고 탄식하며 꽃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그러자 꽃이 서서히 오므라들었고, 마침 지나가던 궁녀가 이 모습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가는 곳마다 ‘양귀비가 꽃들과 아름다움을 견주었는데, 꽃들이 모두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하는 소문을 냈다는 일화다.
중국 역사상 몇 안 되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장본인이지만 양귀비에게 빠지면서부터 점점 정세가 기울게 된다. 나아가 ‘양국충’과 ‘안녹산’을 비롯해 양귀비의 일가친척 환관과 탐관오리가 득세하게 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망국으로 치닫게 된다.
혈연, 학연, 지연을 중심으로 한 국가는 결국에는 망하게 되어있다. 혹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출처]중국의 4대 미녀와 4대 악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