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정관지치 - 위징

20h20h 2024. 1. 14. 07:49
728x90
반응형

당 태종 이세민은 명군(名君)으로, 그의 치세는 정관지치(貞觀之治)’라 해 성공한 통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간관(諫官) 위징(魏徵)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원래 위징은 태종과 제위 다툼을 벌이다 죽은 이세민의 친형 이건성(李建成)을 보좌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태종은 위징을 발탁하고 과감하게 중용했습니다.

위징은 직간(直諫)을 거듭해 황제의 분노를 샀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태종이 사냥을 나가려고 말을 준비시켰다가 이윽고 취소했습니다.

위징이 이유를 묻자 황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대에게 야단맞을 일이 두려워서 포기했소.”

사냥을 좋아하는 태종이 매 한 마리를 헌상 받고는 팔위에 올려두고서 몹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위징이 다가오자 잔소리를 들을까봐 매를 품속에 넣었습니다.

황제가 매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못마땅했던 위징은 일부러 시간을 끌었고 결국 매는 태종의 품속에서 질식해 죽었습니다.

위징의 간언에 입맛을 잃을 정도였지만 태종은 한 번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위징이 죽었을 때 나는 이제 거울을 잃었다하며 탄식했습니다.

태종은 고구려 원정에서 참패를 당한 후 귀국하면서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나한테 이런 걸음을 하게 하지 않았을 텐데(魏征若在 不使我有是行也)”라고 했습니다.

 


간언(諫言), 쉽지 않습니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고 지금은 자리를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간언은 해야 합니다. “간언(諫言)을 하면 자신이 위태롭지만, 간언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다간언의 달인 위징의 말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