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양화편 제12장>17-12-01子曰,“色厲而內荏,譬諸小人,其猶穿窬之盜也與?”
17-12-01子曰,“色厲而內荏,譬諸小人,其猶穿窬之盜也與?”
子曰 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
공자 가라사대 “낯빛이 위태로우면서 속은 고약한 자들을, 저 소인으로 비유하건대 그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둑과 같도다.”
厲 위태로울 려 荏 들깨 임, ‘고약할 임’穿 뚫을 천 窬 넘을 유, 협문 유
厲威嚴也荏柔弱也小人細民穿穿壁窬踰牆言其無實盜名而常畏人知也
厲는 威嚴也오 荏은 柔弱也라 小人은 細民也라 穿은 穿壁이오 窬는 踰墻이니 言其無實盜名而常畏人知也라
여(厲)는 위엄이고, 임(荏)은 유약함이라. 소인은 미세한 백성이라. 천(穿)은 벽을 뚫음이고, 유(窬)는 담을 넘음이니 그 실제 도둑이라고 이름 하지는 않았으나 항상 사람을 두려워할 줄을 앎을 말함이라.
<家苑 註 >
양화편 11장부터 18장까지는 주로 당시 위정자들의 행태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위 문장은 11장에 이어 예악을 중시한다고 하고는 사치와 형식으로 치우치며 참람된 짓조차 서슴지 않는 위정자들을 공자가 노골적으로 대놓고 비난하고 있다.
여기서 厲를 주자는 ‘威嚴也’라 했고, 공영달(孔穎達)은 ‘矜莊也’라 했으며, 荏을 주자는 ‘柔弱也(유약함이라)’라 했고, 공영달은 ‘柔佞也(부드러우면서 아첨함이라)’라 했다. 두 해석 사이에 큰 차이는 없으나 주자는 ‘荏’의 뜻을 ‘무르고 약하다’고 했고, 공영달은 ‘무르면서 아첨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 두 해석만 가지고는 공자가 ‘色厲而內荏’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를 ‘穿窬之盜’에 비유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厲와 荏의 뜻을 좀더 살펴보자. 厲는 본래 ‘거칠고 모가 난 돌’을 뜻하며(“旱石也”, 설문) 여기에서 전화(轉化)되어 ‘갈다, 힘쓰다, 사납다, 거칠다, 위태롭다’는 뜻으로 쓰이고, 특히 주역 효사(爻辭)에서 ‘厲’는 자리가 바르지 못하거나 제 자리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행할 경우 ‘위태롭다’는 뜻으로 쓰인다. 공자 당시의 높은 벼슬아치들은 대부분 자질을 갖추지 못한 소인배들이다.
이들은 자리를 장악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어 얼핏 보면 위엄스런 표정을 짓는 것 같지만 실은 부당하게 얻은 자리인지라 언제 빼앗길 지 모르므로 그 낯빛에는 위태로움이 서려있다. 그런 점에서 ‘厲’를 어느 정도의 품격이 담긴 말인 ‘위엄스러움’이 란 뜻으로 볼 수 없다. ‘씩씩함’이란 뜻은 더욱 아니다. ‘厲’가 주역에서 많이 쓰였는데 거의 모두 ‘위태롭다’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본문의 ‘厲’는 ‘위태롭다’라는 뜻이 정확하다.
荏자는 ‘들깨’를 뜻한다. 오늘날 들깨는 볶아서 기름을 짜서 먹거나 가루로 빻아 나물을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는데 쓰이는데 옛날에는 가구나 마룻바닥을 윤기 나게 하는데도 많이 쓰였다. 이에 공영달은 ‘柔佞’이라고 표현한 듯하고, 가루가 하얗고 부드럽기에 주자는 ‘柔弱’이라고 표현한 듯하다.
그런데 농약이 없던 옛날에 농사를 지었던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들깨는 주로 논밭의 가장자리에 둘러 심었다. 오늘날 화학비료를 쓰면서 기르는 들깨와 달리 옛날의 들깨는 그 향이 매우 강하여 벌레들도 싫어했고 가축이나 짐승들도 피했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밭둘레에 심어 작물을 보호할 수 있었다.
특히 소에게 꼴을 먹이러 데리고 나갈 때 논밭 사이로 난 길을 지나다보면 소가 작물을 뜯어 먹게 되는데 가장자리에 들깨를 심어놓으면 소가 그 향을 피하느라 고개를 돌리므로 작물을 보호할 수 있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의 경우 들깨 밭 옆을 지나가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향이 강했는데 이런 독한 향을 표현하는데 흔히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따라서 본문에서 공자가 당시의 위정자들의 속 마음에 대해 ‘들깨 임(荏)’자를 써서 표현한 것은 그들의 행태가 그만큼 ‘고약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色厲而內荏’이란 당시 소인 위정자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세금을 도둑질하며 중도를 벗어나 과한 짓을 일삼고 있기에 그 표정에는 위태로운 기운이 서려 있으며, 마음 속 또한 부귀영화를 위해 중상모략과 아첨을 일삼고 있기에 고약하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낯빛이 위태롭고 마음 또한 고약하기에 공자는 당시 위정자들을 소인 가운데에서도 가장 하품인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러 다니는 도둑에게 비유하여 질책한 것이다. 겉으로는 담력이 센 체하지만 실제로는 언제 들켜서 잡힐지 모르는 도둑의 모습이 당시 위정자들의 행태인 것이다.
易泰卦에 以內健外順으로 爲君子之道요 否卦에 以內柔外剛으로 爲小人之道하니 此則厲者는 外爲剛之容이오 荏者는 內蘊柔之惡者也라
주역 태괘에서는 안으로 강건하고 밖으로 순함으로써 군자의 도를 삼고, (주역의) 비괘에서는 안으로 무르면서(柔) 바깥으로 강함으로써 소인의 도를 삼았으니, 이것은 곧 ‘厲’는 바깥으로 강한 용모가 되고, ‘荏’은 안으로 무름(柔)의 악함이 쌓인 것이라.